[면세강국의 이면①]3년새 면세점 2배 급증…'나눠 먹기'로 좀 먹은 실적
2010년 초ㆍ중반까지만 해도 국내 면세점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수식어를 꼬리표처럼 달았고 다녔다. 당시엔 중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실적도 수직상승했다. 그러나 황금기는 짧았다. 오히려 그때의 영광은 상처만 남겼다. 중국의 금한령으로 적자를 내고 있고, 면세 사업을 지원해야 할 정부는 귀를 닫아 버렸다. 국회의원들마저 면세 사업자들이 수십 년간 일궈 놓은 성과는 무시한 채 '독과점' 프레임을 적용, 규제 일변도로 치닫는 상황이다. 국내 면세점들은 전방위 공격을 받으며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1962년 김포공항 출국장에 국내 최초로 면세점이 들어선 이후 56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은 국내 면세점 업계의 현안을 진단하고, 돌파구를 3회에 걸쳐 모색해 보고자 한다.
<1> 3년 만에 서울 시내 면세점 6개→13개
<2> '울며 먹는 겨자'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3> 우는 면세점 뺨까지 때리는 규제
[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2015년 6월. 당시 서울 시내 면세점은 6개였다. 롯데면세점이 3개(명동본점잠실 월드타워점 ·코엑스점)을 운영하고 있었고 신라면세점 장충점, 워커힐 면세점, 동화면세점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만 3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18년 3월 현재 서울 시내 면세점은 총 13개까지 늘어났다 . 이 중 3개는 아직 문도 열기 전이다. 올해 말 이들까지 영업을 시작하면 면세점끼리 나눠 먹을 '조각 파이'가 더 작아질 것으로 예상돼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서울 시내 면세점은 국내 면세점 사업의 요충지다. 중국인 관광객의 소비를 흡수하는 곳이자 면세점 실적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롯데, 신라, 신세계 등 국내 주요 면세점들은 서울 시내 면세점에서 거둔 영업이익으로 만년 적자인 공항 면세점 운영을 이어가고 있을 정도다. 서울 시내 면세점이 흔들리는 순간 전체 수익이 타격을 입는 구조다.
◆롯데면세점 지난해
2분기 첫 적자, 신라면세점도 실적 내리막길
문제는 서울 시내 면세점들의 '조각 파이'뿐 아니라 '전체 파이'까지 작아진다는 것이다. 서울 시내 면세점 숫자가 2배 이상 늘어나는 동안 중국인 관광객은 2분의 1로 줄어들었다. 한국관광공사 조사에 따르면 2016년 방한 중국인 관광객은 806만7722명, 지난해는 416만 9353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48.3% 급감했다. 우리나라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설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 탓이다.
면세점은 즉각 타격을 입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2분기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냈다. 같은 해 하반기부터 흑자로 돌아서 3분기 기준 누적 영업이익은 350억원이지만 2016년 연간 영업이익의 10분의 1 수준일 뿐이다. 신라면세점 역시 3년 내내 실적이 내리막길을 타고 있다. 중소 면세점은 더 열악하다. SM면세점은 6개층으로 운영하던 매장을 4개층으로 줄였다.
A면세점 관계자는 "센카쿠 열도 분쟁 때문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빠져나간 뒤 일본이 그 충격을 회복하는 데 3년이 걸렸다"며 "다이궁(代工ㆍ중국인 보따리상)이 아닌 요우커(중국인 관광객)들이 들어와야 실적에 도움이 되는데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고 면세점만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신규 면세점을 허용했던 건 면세점이 '황금알 낳는 거위'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발단은 중국인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2013년부터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우리나라에 오던 일본인 관광객들은 발길을 뚝 끊었고, 대신 센카쿠 열도 분쟁으로 일본에 가던 중국인들이 한국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중국인이 몰려오기 시작하자 면세점 실적도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롯데면세점 영업이익만 봐도 알 수 있다. 직전 연도 대비 2013년엔 18%, 2014년엔 46% 올랐다.
◆독과점 문제로 홍종학법 개정 …시내면세점 최대위기 시발점
이런 현상이 면세점에 득이 되지 만은 않았다. 독과점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의 시장점유율을 합치면 80% 가까이 달했다. 두 사업자를 견제한다는 명목으로 면세점 특허 갱신 기간을 기존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일명 '홍종학법(관세법 개정안)'이 생긴 것도 이 무렵이다. 이후 2015년 7월 1차 특허, 같은 해 11월에 2차 특허, 2016년 12월3월에 3차 특허에 걸쳐서 서울 시내 면세점이 7개 더 늘었다.
1차 특허에서 선정된 면세점들(HDC신라 ·한화갤러리아 ·SM면세점)은 정부의 독과점 해결 의지에 따라 신규로 진입했다. 2000년 신라면세점 장충점이 생긴 이후 정부는 15년 만에야 3개 사업권을 새로 내 준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잡음은 없었다. 논란은 2차 때부터 불거졌다. 홍종학법으로 인해 특허권 만료가 된 롯데 명동점 ·롯데 월드타워점 ·SK워커힐점 중 명동점을 제외한 2군데가 떨어졌다. 대신 신세계DF 명동 ·두산 두타점이 새로 사업권을 획득했다.
3차 특허는 2차 특허에 등 떠밀려 진행됐다. 2차 이후 폐점한 면세점에서 고용 문제가 불거진 데다 정부는 중국인 관광객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착각했다. 관세청은 추가 사업자 선정 계획을 발표했고, 2016년 12월 롯데월드타워점에 다시 허가권을 준 것을 비롯해 현대백화점 ·신세계DF(고속터미널) ·탑시티를 새 사업자로 선정했다. 1차 특허에서 3개 사업자가 선정된 이후 1년 만에 4개 사업자가 또 생긴 셈이다.
급격히 늘어난 숫자 때문에 면세점이 '황금알 낳는 거위'에서 '황금알 뺏긴 거위'가 됐다는 게 사업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정부가 면세사업의 큰 그림을 주도하는 이상 업계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제한적이다. B면세점 관계자는 "다른 허가사업자인 홈쇼핑이나 종편, 철강, 카지노 사업자들도 이처럼 급격하게 사업자 수가 늘어난 적은 없다"며 "면세 사업자들과 정치권까지 그렇게 반대했음에도 관세청은 별다른 이유 없이 추가 선정을 강행하면서 시장 자체가 훼손됐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이훈 한양대학교 관광학부 교수는 "작년에는 사드 탓에 관광객 수가 줄어들면서 수익률이 추락했지만 여전히 한국에 오는 관광객들에게 면세 쇼핑은 매력적인 코스"라며 "지금은 업계와 정부가 금한령 해제 이후를 대비해 중국인 관광객의 소비 행태를 파악해 1인당 지출액을 늘리는 방법을 포함해 면세시장 파이를 키울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준비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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